Part 1.엄마, 2022년 - 내 삶에 음악이 없었다면

나른해지는 오후 2시… 나는 오늘도 운동화 끈을 조여 맨 후 스트레칭을 하고 현관을 나섰다.

나에게는 두 딸이 있다. 뽁뽁이 신발을 신고 아장아장 걷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둘다 훌쩍 커버려 20대가 되어버린 내 딸들… 이제는 더 이상 내 손길이 그닥 필요하지 않은 성인이 되어버린 딸들... 그러고보니 어느덧 내 나이도 벌써 50대 중반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고 있다.

요즘 나에게도 반갑지 않은 갱년기가 찾아와 오늘도 나는 탄천을 열심히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걸었다.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가로의 결혼’ 中 '편지 2중창 - 산들바람의 노래 (Mozart: Canzonetta Sullaria)'을 들으며 나만의 환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음악'이란 존재는 나에게 있어 음표 하나하나가 내 머릿 속 만가지 생각들을 지워주는 것이다.

탄천을 걸은 날은 그래도 저녁에 잠을 잘 수 있기에, 체력이 가능한 날엔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 곡을 들으며 왕복 3시간씩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걷고 또 걷는다.

나는 성악곡이 너무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가는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클라라 슈만이다.

*클라라 슈만. 슈만의 부인이자,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고 교육자였던 그녀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이다.  

클라라는 남편인 슈만의 음악적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작곡 활동을 도왔다. 특히 슈만은 작곡할 때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집안 일은 모조리 그녀의 몫으로 돌아왔다. 또한 슈만의 작곡에 방해가 될까봐 집에서는 피아노 연주조차 할 수 없었지만, 집안 일을 떠맡은 상황에서도 연주 활동과 작곡 활동도 하는 대단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참고로 슬하의 자녀는 4남 4녀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억척스럽고 끊임없이 인내하는 슈퍼맘의 삶을 살았던 것인데 아마도  옛한국의 어머니상과 매우 흡사했을 듯하다. 음악세계도 그렇지만 나는 이런 점에서 클라라 슈만을 좋아한다. 사실 두명의 딸 때문에, 한사람의 아내이기 때문에 포기해야했던 부분들이 많았던 나였기에...

클라라의 인기에는 빼어난 미모와 우아하고 기품 있는 태도도 한몫 했다고 한다. 21세기 이후 클라라의 작품들이 발굴되어 종종 연주되고 있다. 클라라가 남긴 작품은 그리 많지 않고 주로 생애 초반에 작곡된 것들이지만 나름 작곡가로서의 클라라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나는 클라라의 피아노곡을 좋아한다. 슈만의 영향 때문인지 슈만의 음악과 닮은 듯하면서도 클라라만의 독특한 기교가 느껴진다. 오늘도 걸으며 드는 생각이지만 역시 나는 음악적으로 타고난 재능없이 타고난 열정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오늘은 문득 내가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속에는 기쁨과 즐거움 만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어느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지... “산다는 것도 걷는 것과 같다”고. “그냥 이 순간을 살면 된다”고.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가장 의미 있게 살면 된다”고. 내 나이 50 중반을 향하고 있지만 아직도 세상을 배워나가야 할 일들이 백만 스물한가지…. 요즈음 그동안 코로나19로 활동을 자제했던 음악회들이 다시 활기를 띄는 모양이다. 작은 음악회를 같이 준비하자고 지인들한테 연락이 제법 온다. 인생은 50부터라는 말처럼 이 따위 갱년기에 우울해하지도 겁내지도 말고 씩씩하게 헤쳐 나가야지, 다시 내 꿈을 위해 도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또다시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가본다.

2022년 6월의 어느날

*참고문헌 : 나무위키 - 클라라 슈만

Part 2.스무살 딸, 2020년

2020년 1월 1나는 연습실에서 혼자 새해를 맞이하였다.

매년 그래도 가족과 함께 새해를 맞이 했는데나는 1월 1일부터 혼자였던 기억이 난다서러웠지만희망찼다아니 사실 두려움이 제일 컸을지도 모르겠다대학의 당락이 전부였던 나에겐 그 다음주에 있었던 시험이 제일 걱정이었다할 수 있을까?와 내년의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2020년 2월 4일. 마지막으로 결과가 나는 지금 다니는 학교의 최초합 결과를 보고

세상이 떠내려가도록 울었다보자마자 눈물부터 났다하루하루 다른 학교의 예비 번호가 줄어들길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던 나는 최초합 결과를 보고 그렇게 만감이 교차할 수가 없었다. 13.4:1 그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다는게 너무 안믿겼던 것 같다사실 1지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학생이 된거였으니까 그렇게 마음 편히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무리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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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위에 쓴 내용들이 올해를 만들어 내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2020년 초에는 코로나가 별로 퍼지지 않아있어서 입시도 잘 치뤘고항상 머릿속에 그리던 스무살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생각치도 못한 코로나에 너무 우울했고슬펐고무기력했다사람이 붐비는 캠퍼스를 누리지 못했고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은 것 같았다.

강의도 강의실에서 들어보지 못하고 노트북 화면 넘어 교수님을 뵙고동기들을 봐야 했지만난 그마저도 감사했던 것 같다어쨌든 작년 내내 간절히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이제 힘든것도 없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생이라서 행복함과 같이 든 생각은 안 힘들었다고 하면 정말 거짓말이라는 것하나하나 다 챙겨주고알려주는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대학은 알아서 스스로 잘해봐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과제도 이전에 하던 숙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약간 숙제 심화 버전이었던 것 같다교수님께서 원하시는 포인트가 무엇이며이 과제를 통해 내가 어떤 지식과 배움을 얻어갈 수 있는지 알아서 해결하는 듯한 그런 미션을 가지고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 1,2학기 모두 과제 하나를 제출하기 위해서 수없는 수정을 했고하루에 몇시간씩 붙들고 다듬고 또 다듬었다. 2학기에는 과제 하나 당 책 10권씩을 읽어가며 과제를 하고 또 과제를 했다. 1학년 교양수업은 대부분 에이쁠의 쾌거를 이루었다그렇게 차석이라는 타이틀도 가질 수 있었다악기전공 인생 처음으로 실기우수도 해보고 뭐 굉장히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다른거 에이쁠 받은 것보다 그거 점수 잘 받은 게 훨씬 좋았다.

그리고, 올해는 시작부터 항상 가르칠 기회가 많았다항상 모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믿고 맡기는 사람들이 나를 많이 찾았다공부 과외 부터 시작해서 애기 레슨교육 봉사까지.

정말 감사하게도 주변에 좋은 선생님들이 많아서 조언도 얻고혼자 연구를 해 가며 수업에 임했다덕분에 일년 동안 많은 노하우가 생겼던 것 같다하지만 아직 너무 많이 부족하기에 더 열심히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제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을 하는게 내 수업의 비전인데아이들이 잘 이해해서 조금씩 성장하면 나도 같이 성장하는 기분이라 행복하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고르라면 처음 정식으로 배우는 8살 꼬맹이가 초견도 엄청 좋아지고크리스마스 다 되서 가르쳐주지도 않은 루돌프 사슴 코를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너무 감동이어서 울 뻔한 순간이다아이들을 통해 얻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많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기분으로 힘들었고 아프기도 많이 아팠던 내 스무살,

추억을 회상하며 밤에 생각도 잠겨보고 힘들어도 해봤던 내 스무살.

항상 스무살에는 뭘 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내 스무살이지만나만 힘든게 아니고 모두가 힘드니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 지내야 잘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던 내 스무살.

침대에 이렇게 있어도 되나 할 정도로 많이 누워있었던 내 스무살주어진 것에 대해 항상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임했던 내 스무살좋은 기회가 많이 찾아왔고찾아왔을 때 생각보다 더 많은 요인들을 생각하고 결정하는 순간까지 많은 생각과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배웠던 내 스무살소중한 인연들에게 사랑받고사랑을 나누고고마움을 더 느꼈던 올해.

내년에는 더 열심히 살고잘하는 스물한살이 되어있기를.

스물한살의 나에겐 더 용기를 가지고 살아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하고 싶은거 다하고지금보다는 나은 상황이 되어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2020년 마지막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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