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sh Landing

생각보다 캄캄한 우주 공간.

그 곳에 자리하고 있는 우주선.

그리고 그 안에 남자와 여자가 있다.

 

두 비행사는 각자의 공간에서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

기록을 남기지 않을 때는 부유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것저것을 한다.

 

(눈 깜빡임 같이 조명의 깜빡임 등으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며, 후반으로 갈수록 공간은 비좁아 보인다.)

[ 남 ]

(주변, 송수신 불량으로 다소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D-160일. 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비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까먹은 것 같다. 한, 네 달 정도 됐나? 눈은 내렸을라나. 지나가는 날보다 남은 날을 새는 일이 더 익숙… 아니, 더 의미 있어졌다. 그래, 더 의미 있어졌다. 남아있는 날을 지나 무사히 도착만 한다면 꽃 피는 봄이 기다릴 것이다. (장비를 만지는 남자) 오늘도 본부와 교신을 시도해본다. 하지만…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잠시 두드러진다.) 답답함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남은 흥분 때문인지, 심장박동이 꽤나 높다. 건강 체크 결과, 이상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오늘도 별일 없이, 별 탈 없이 랜딩할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아… 본부랑 교신 되겠지? (조명 깜빡)

[ 여 ]

D-130일. (갑자기 신나서) 예쓰, 예쓰, 예쓰!! 드디어 본부랑 교신을 성공했다. 와~ 진짜. 천재 천재 천재 (의식하듯 살짝 웃으며) 아 뭐 사실, 정확하게는 수신 양호다. 아직, 송신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를 콕 집으며) 그래도 다섯 달 만에 저 녀석이 아닌 지구에서 날아 온 목소리를 전송받을 때의 떨림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 여 ]

(잠시 사이, 시간의 흐름이 있다.)

D-120일. 흐흐흐. 드디어 채널 개통. 이제는 송신을 할 수 있다. 물론 시스템적으로 송신은 모스 부호로만 가능하다. 하지만 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답답함이 사라진다.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답할 수 있어 답답함이 사라진다. 와~ 이 라임 어쩔. (민망한 듯 웃다가, 리듬을 타며 모스 신호를 보낸다.) 뚜 뚜뚜 뚜루루, 빨리 보고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조명 깜빡)

 

[ 남 ]

(수신음이 다양하다. 생활 소리/소음 같이 들린다.)

D-90일. 음… 그 사이 외부와의 채널이 여러 개 개통되었다. 덕분에 답답함은 많이 해소되었지만… (다소 찢어지는 음성의 소리가 들린다.) 불가피하게 상태가 안 좋은 녀석들도 있다. 인생이라는 게 항상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본부에 이야기 좀 해야겠다. 좀 조용한 분위기에서 전송해주면 안되겠냐고. 잘, 알아듣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 남 ]

(시간이 흐르고, 딸꾹질 소리, 중간 중간 딸꾹질을 한다.)

D-80일. 딸꾹. (약간은 피곤한 듯) 아… 힘들다. 드디어 올 게 왔다. 비행해 본 사람만이 아는… 딸꾹, 아… 이게 한 200일 넘을 때 쯤 되면, 폐가 환경에 새롭게 적응하는 중에 발생하는, 딸꾹, 뭐 그런 거다. 아…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코와 입을 막고 숨을 참는 남자, 조명 깜빡)

 

[ 여 ]

D-65일. 남들은 보통 독립 비행인데, 어쩌다보니 난 동행을 하게 되었다. 동행이 있어서 나쁜 건 아니다. 뭐, 시기적으로 좁아져서 가끔 발에 채이긴 하지만. (갑자기 생각난 듯, 살포시 남자 쪽을 향해 째려보며) 겁나 아파.

[ 남 ]

(트램폴린에서 뛰고 있다가 여자가 째려보는 것을 눈치 채고는 조용히 내려와 마치 변명하듯)

중력이 꽤나 크게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외력으로 내부의 점유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교신으로 답답함이 좀 해소되나 싶었는데, 생활공간이 많이 답답해졌다. 자꾸 부딪쳐서 미안하긴 하지만 뭐… 별 수 있나. (잠깐 눈치 보는 듯 하다가) 여하튼 슬슬 랜딩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여자와 동시에) 이제 얼마 안 남았다.

[ 여 ]

(남자와 동시에)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암전.

David Bowie의 곡 “Starman” 또는 비슷한 느낌의 곡이 흐른다.

벽면에 시계(시:분:초)를 나타내는 ‘1000:00:00’ 타임라인이 뜬다.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400:00:00’ 근처로 가면서 서서히 느려진다.

해당 시간동안 남자와 여자는 반복적인 일상을 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보여 준다. 먹고(팩으로 쪽쪽 마신다.), 운동하고(트램폴린을 뛴다.), 딸꾹질(음악에 맞추는 것도 좋겠다)도 했다가 일일기록을 하고 잠을 잔다. 한 번씩 서로 부대끼기(걷어차고 차인다)도 한다. (중간중간 ‘그만 좀 뛰라고 여기까지 다 울린다고’, ‘운동을 못하니까 자꾸 살찌는 것 같아서’와 같은 대사를 넣을 수 있다.)

잠시 암전, 조용하다.

[ 여 ]

D-15일. 어느덧 보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지난 38주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 남 ]

삼팔은 광땡 (여자가 천천히 째려본다.)

갑자기 비상 경고음, 긴급 상황.

[ 남 ]

왜 이러지?

[ 여 ]

본부, 본부 응답하라!

[ 남 ]

통신 두절됐어!

[ 여 ]

본부, 본부! 외부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본부, 본부!!

[ 남 ]

설마, 외계인?

섬광.

[ 여 ]

아, 눈부셔. 윽 (외부로 사라진다.)

[ 남 ]

어디로 간 거야! 본부, 본부!

[ 남 ]

(곧이어 사라진다) 아아악, 이 빛은 뭐야!!

이어지는 찰싹 때리는 소리.

그 뒤로 아이 우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 남 ]

본부, 본부!

[ 여 ]

살려주세요!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축하드려요. 고생하셨어요”가 울리며,

아이 우는 소리를 천천히 덮는다.

끝.

* 5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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